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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2020-04-13
[박현선의 문화톡톡] 빛나는 여성영화인을 기억하며
연구소명 :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연구소구분 : 잡지 보도매체명 : 르몽드
링크  : 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2424
첨부파일
1.

돌이켜 보니, 4월 16일은 한국영화계의 큰 별이자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삶을 살았던 여성영화인 최은희가 타계한 지 꼭 2년이 되는 시점이다. 2018년 당시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게스트프로그래머를 하던 나는 급하게 ‘최은희 스페셜 톡’을 준비하고 영화제에서 특별상영전으로 최은희가 ‘감독’한 두 편의 영화 <민며느리>(1965)와 <공주님의 짝사랑>(1967)을 몇십 년만에 다시 관객에게 소개했다. 한국영화의 황금기인 1960년대를 정점으로 수없이 카메라 렌즈의 빛을 받으며 그 앞에 섰던 배우로 기억되는 최은희지만, 사실 그는 1960년대에 이미 위 두 편의 영화와 <총각선생>이라는 영화를 제작하고 그 유명한 납북 사건을 겪은 이후 북한에서는 <약속>을 연출하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은 총 3편이지만, 한국영화사에서 여성여성인으로서 최은희는 박남옥 감독과 홍은원 감독에 이어 대한민국 세 번째 여성감독이다.   

 


최은희 감독 특별전
2. 최은희라는 여성영화인과 그 시대

최은희는 당대 최고의 스타로서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여성영화인이자 냉전기 남북갈등의 최전선을 넘나든 시대적 인물이었다. 연극 <청춘극장>(1942)으로 데뷔했고 영화 <새로운 맹서>(1947)를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했던 그는 1953년 영화감독 신상옥과 재혼한 후 오랫동안 신감독의 페르소나이자 동반자로 극적인 삶을 살았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로 <지옥화>(1958), <상록수>(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빨간 마후라>(1964), <로맨스 그레이>(1963), <청일 전쟁과 여걸 민비>(1966), <여자의 일생>(1968) 등 1960년대 대표적인 영화의 주연을 맡으로 스타 중의 스타로 활약했다. 그가 지닌 도회적인 얼굴과 좁은 어깨선은 전통적인 여인상에서 치명적인 팜므 파탈, 모던한 전문직 여성까지 폭넓은 역할을 오갈 수 있도록 했는데, 최은희의 스타 이미지는 모더니티와 전통을 아우르며 그 정체성을 마련하고자 했던 당시 한국영화의 욕망을 잘 투영하고 있다.

 
최은희의 인생 중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을 꼽으라면 당시 국내외 언론 모두 ‘세기의 납치 스캔들’이라고 일컫었던 최은희·신상옥 납북 사건일 것이다. 1960년대 슈퍼스타 커플이었던 두 사람이었지만 1970년대 후반 이들의 제작사인 신필름이 실질적으로 몰락하며 어려움을 겪던 시점에 최은희는 안양영화예술학교를 설립하고 주로 영화교육가로 활동하던 중이었다. 1978년 홍콩으로 출장을 간 최은희가 먼저 갑자기 사라졌고 그 실종의 흔적을 찾아 헤매던 신상옥도 행방이 묘연해졌다. 이들이 북으로 갔다는 추측과 루머만 남긴 채 8년의 시간이 흐른 후, 신상옥과 최은희는 마치 영화처럼 다시 등장했다. 홍콩에서 북한으로 납치된 이들이 목숨을 걸고 탈출한 것이다. 사라진 8년의 진실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독재자와 연인>(로스 아담, 로버트 캐넌, 2016)을 보면, 최은희의 납치를 암시하는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육성 녹음이 남아 있다. 북에서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되었던 이들이지만 두 사람은 1983년부터 북한영화계에서 큰 역할을 맡게 되는데, 북에서 만든 신상옥 감독, 최은희 주연의 영화 <소금>이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최은희는 북한을 대표하는 배우가 되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독재자와 연인>에서 두 사람의 영화제작 현장사진들이 많이 나오는데, 최은희가 거의 제작자나 연출가와 마찬가지로 대등한 관계로 카메라 옆에 서서 촬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서울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두 편의 영화 <민며느리>와 <공주님의 짝사랑>은 감독 최은희의 면모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점을 한번 더 상기시켜준다.


3. 최은희 감독의 데뷔작 <민며느리>

최은희의 감독 데뷔작 <민며느리>는 가난 때문에 부잣집 어린 신랑에게 시집온 한 민며느리의 우여곡절을 담은 이야기다. 몰락한 양반 과부의 딸 점순은 시집 온 후 한시도 쉴 틈이 없다, 며느리를 하인 부리듯 하는 시어머니는 부엌살림에서 집안 청소, 빨래, 곡식 빻기와 바느질을 모두 떠맡긴 채 곰방대를 물며 잔소리를 해대기 바쁘다. 어려운 시집살이에도 점순이 버틸 수 있는 것은 어려서 배운 ‘여자된 도리’와 철부지 어린 신랑의 밉지 않은 응석 덕분이다. <민며느리>는 1960년대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배우의 연출작답게 스타 시스템과 멜로드라마적 장르 관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코흘리개 남편과 성숙한 아내 사이에서 전개되는 다채로운 에피소드는 봉건 제도 아래 고부 갈등이라는 익숙한 문제를 신선한 각도에서 조명하게 해준다. 영화의 초반이 민며느리의 고된 생활을 중심으로 여성 주인공에 관객이 몰입하게 만들었다면, 영화의 후반부터는 시댁에서 쫓겨난 점순을 되찾아오려는 어린 신랑의 사랑과 다시 점순을 받아들이게 되는 시어머니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드라마투르기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얼핏 보면 관습적인 멜로드라마와 희극적 재미, 보수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않는 영화지만, <민며느리>는 ‘여성 감독’ 최은희의 시선을 엿볼 수 있도록 해준다. 즉, 영화는 한국사회의 유교적이고 가부장적 의식이 어떻게 여성의 삶에 내면화되었는가를 드러내는 동시에, 결혼 제도의 구조적 억압과 가정 내 여성 노동의 고됨을 담은 희극적 소묘이다. 또한, 당대의 스타였던 김희갑, 황정순, 서영춘 등이 펼치는 연기는 코믹하기도 하고 전형적인기도 한데, 각자가 맡은 바대로 자상하지만 힘없는 시아버지, 이기적이고 무자비한 시어머니, 마음은 선하지만 덜렁대는 하인을 보여준다.

직접 주연을 맡은 인물은 가난한 과부의 딸 점순이다. 몰락한 양반의 딸로 돈 때문에 김 좌수집에 민며느리로 팔려가 하인보다 심한 노동에 시달리게 된다. 본래 민며느리제는 신랑이 신부의 집에 재물을 주고 신부를 미리 데려와 일을 시키다가 나중에 혼인을 시키는 제도로, 결혼이 두 남녀의 결합이 아니라 일종의 노동 교환이라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최은희 감독의 <민며느리>는 봉건적 유교사회를 배경으로 고부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외피 너머로, 그 갈등의 중심에는 여성에게 되물림되는 노동의 중압감과 두 세대의 여성이 사회적 모순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통찰하고 있다.

 

4. 젠더 전복의 시대극 <공주님의 짝사랑>

<민며느리>에 이어 최은희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공주님의 짝사랑>은 시대극의 외양을 입은 로맨틱 코미디다. 말괄량이 막내 공주 숙경은 또래 궁녀들과 숨바꼭질을 하는 것이 즐겁고 궁궐 밖 세상이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 왕대비의 생일 잔치를 맞아 숙경 공주에게 기회가 온다. 숙경 공주는 오랜만에 친정에 돌아온 언니 공주들의 도움을 받아 바깥 구경을 하게 되고, 우연히 만난 성균관 선비에게 한눈에 반하게 된다. 영화는 <로마의 휴일>이나 세익스피어의 희곡 <십이야>를 연상시키는 로맨스 코미디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역할들의 전도가 주는 재미를 담고 있다. 궁중 복식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왕대비는 눈이 안 좋아 안경을 쓰고 나타나고, 밤낮 공주를 지키는 상궁나인은 평소 행동이 느리고 깜박깜박 졸지만 큰 몸짓으로 남자 졸개들을 밀어붙이기에 모자람이 없다. 공주가 궁궐 밖에 나가 보여주는 모습은, 시장에서 자꾸 맛을 보라는 떡을 공짜인 줄 알고 받아먹는 등 순진하고 촌스러운 시골처녀처럼 보인다.

1960년대 초중반 화려한 촬영소를 마련하고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제작해 온 신필름에서 최은희는 감독으로서 자신의 역량을 실험해보며 확실한 성장을 보인다. 일례로, <민며느리>와 비교해서 훨씬 다양한 캐릭터들을 조율하고 있으며, 정교한 연출과 카메라 움직임을 선보이고 있다. 더 나아가, <공주님의 짝사랑>은 여성영화와 관습적 드라마가 만날 때 발생하는 긴장을 여러 가지 차원에서 드러낸다. 허울좋은 명문가와의 혼사를 거부하고 사랑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공주 신분을 폐해달라고 요청하는 숙경의 모습은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의 길을 선택하면서도 자신의 힘으로 사랑을 일구려는 독립적인 여성의 상을 이중적으로 보여준다.

 

5. ‘외롭고 높고 쓸쓸한’ 여성영화인의 역사를 발굴하기

현재의 시대는 과거를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만큼 더 그 기억을 절실하게 요청하는 시대이다. 우리가 기존에 알았던 역사는 사실 힘을 지닌 사람들의 역사였다는 점을 굳이 발터 벤야민의 성찰을 빌리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혹은 백석의 싯구에 나왔던 대로, ‘외롭고 높고 쓸쓸한’ 여성영화인들은 한국영화의 역사에서 지워지고 배제되고 특정한 이미지로서만 소비되어 왔다. ‘스크린의 별’로 기억되는 최은희가 직접 스크립트를 들고 카메라를 잡으며 ‘레디고 액션’을 외쳤을 그 빛나는 순간들은 이제야 조금씩 발굴되고 있다. 글을 쓰다가 새삼스레 여성연구자로서의 과제가 진중하게 다가온다.

 

 

글: 박현선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객원교수, 『문화/과학』 공동편집장, 한국영화학회 상임이사로 현재 활동하고 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한국학연구소에서 박사후 연구원,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게스트 프로그래머,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한국영화의 모더니즘과 정치적 미학에 관한 연구로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얼바인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아시아 냉전의 문화정치, 한국영화의 정치적 미학, 기억과 정동 연구, 여성과 도시의 관계 등을 중심으로 출판과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출처 :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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